얼마 전에 갑자기 팥죽이 너무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동지 때마다 끓여주시던 그 맛이 생각나서요. 시중에 파는 즉석 팥죽도 먹어봤는데 역시 집에서 직접 끓인 거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제대로 도전해봤습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긴 하는데, 한번 해보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팥죽을 제대로 만들려면 일단 팥 고르는 것부터 신경 써야 해요. 마트에서 팥을 살 때 보면 알이 고르고 윤기가 도는 걸로 골라야 하거든요. 색이 너무 칙칙하거나 쪼글쪼글한 건 오래된 거라 잘 안 삶아지고 맛도 떨어져요. 보통 팥죽 한 냄비 끓이려면 팥 500g 정도면 넉넉한데, 2-3인분 기준이에요. 물에 한번 헹궈서 위로 뜨는 팥은 과감하게 건져내 버리세요. 뜨는 건 대부분 벌레 먹었거나 상태가 안 좋은 거라서요.
팥을 씻었으면 이제 불리는 과정이 필요해요. 찬물에 담가서 최소 6시간 정도 불려주는 게 좋은데, 저는 전날 밤에 담가놓고 다음 날 아침에 쓰는 편이에요. 한 12시간 정도 불리면 팥이 확실히 통통해지면서 삶는 시간도 단축되거든요. 바빠서 불릴 시간이 없다 하시면 뜨거운 물에 2-3시간 정도 담가두셔도 되긴 하는데, 역시 오래 불린 것보다는 식감이 좀 달라요.
불린 팥을 삶을 때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처음 끓인 물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팥을 냄비에 넣고 물을 자박하게 부어서 한번 팔팔 끓여준 다음, 그 물을 쫙 따라 버리세요. 이게 이른바 첫물 버리기인데, 팥 특유의 떫은맛과 쓴맛을 제거해주는 과정이에요. 이걸 생략하면 아무리 설탕을 넣어도 뒷맛이 텁텁하거든요. 첫물을 버리고 나서 다시 깨끗한 물을 넣어주는데, 팥 대비 물을 3배 정도 넣어주세요. 팥 500g이면 물 1.5리터 정도요. 센 불에서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여서 한 시간 정도 푹 삶아주면 돼요.
삶다 보면 팥알이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을 때 으깨질 정도로 물러져야 해요. 이때 체에 걸러서 팥물과 팥껍질을 분리해주는 게 전통 방식인데, 요즘은 블렌더로 껍질째 갈아버리는 분들도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블렌더로 가는 게 영양소 손실도 적고 걸쭉한 식감이 더 좋더라고요. 다만 이물감이 신경 쓰이시는 분은 갈고 나서 한번 체에 거르시면 아주 고운 팥물이 나와요.
이제 쌀을 넣을 차례예요. 쌀은 멥쌀 기준으로 반 컵에서 한 컵 정도면 적당한데, 미리 30분 정도 불려두세요. 팥물에 불린 쌀을 넣고 중약불에서 저어가며 끓이는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바닥에 눌어붙기 쉽다는 거예요. 나무주걱으로 수시로 저어주셔야 해요. 한 20-30분 정도 끓이면 쌀이 퍼지면서 죽 농도가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물을 조금씩 추가해주시면 됩니다.
간은 소금으로 맞추는 게 기본이에요. 설탕은 취향에 따라 넣으시면 되는데, 전통 동지팥죽은 사실 달지 않게 만드는 게 정석이에요. 그런데 단팥죽으로 드시고 싶으면 설탕을 3-4큰술 정도 넣으시면 적당히 달콤해져요. 소금은 한 꼬집에서 반 티스푼 정도, 정말 소량만 넣어도 팥의 고소한 맛이 확 살아나거든요.
새알심을 넣으면 팥죽이 한층 더 근사해지는데요. 찹쌀가루 150g에 뜨거운 물 120ml 정도를 넣고 반죽해주세요. 반드시 뜨거운 물이어야 해요. 찬물로 하면 찰기가 안 생겨서 삶을 때 풀어져 버리거든요. 반죽이 귓불 정도 말랑함이 되면 동그랗게 새알 크기로 빚어주세요. 끓는 물에 넣었다가 동동 떠오르면 바로 건져서 찬물에 헹궈놓으면 됩니다. 이걸 완성된 팥죽 위에 올려서 같이 드시면 쫀득한 식감이 정말 끝내줘요.
전기밥솥으로도 팥죽을 만들 수 있다는 거 아세요? 불린 팥과 물을 넣고 죽 모드로 한번 돌려주면 알아서 삶아지거든요. 다 되면 블렌더로 갈아서 다시 밥솥에 넣고 쌀 추가해서 한번 더 돌리면 끝이에요. 가스 불 앞에서 계속 저어줄 필요가 없어서 확실히 편하긴 한데, 농도 조절이 좀 어려울 수 있어요. 압력솥을 쓰시면 삶는 시간을 확 줄일 수 있는데, 추가 올라오고 나서 약불로 20-30분이면 충분해요. 그다음 불 끄고 20분 정도 뜸 들이면 팥이 완전히 물러져요.
완성된 팥죽은 바로 드시는 게 가장 맛있는데, 남은 건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장 보관하면 2-3일 정도는 괜찮아요. 냉동하면 2주 정도까지도 두고 드실 수 있거든요. 데울 때는 물을 살짝 추가해서 저어가며 데워야 눌어붙지 않아요. 처음 만들어보시는 분들은 과정이 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한번 해보시면 의외로 단순하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무엇보다 직접 만든 팥죽의 그 진하고 고소한 맛은 사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꼭 한번 도전해보시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