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여행, 느린 섬에서 보내는 하루


청산도라는 이름부터 벌써 느낌이 좋잖아요. 푸를 청에 뫼 산, 말 그대로 푸른 산이 있는 섬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가보면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곳이에요. 전남 완도에서 배로 5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작은 섬인데,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빨리빨리에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느리게 걷고 싶을 때, 청산도만큼 좋은 여행지가 또 있을까 싶어요.

청산도의 대표 코스는 슬로길이에요. 총 11코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체 길이가 42km가 넘습니다. 당연히 하루에 다 걸을 수는 없고, 보통 1-3코스를 중심으로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걸어요. 길을 따라 걸으면 바다가 보이다가 논밭이 나오고, 돌담 마을을 지나다가 숲길로 들어서는 식으로 풍경이 계속 바뀌거든요. 특별한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그냥 길 자체를 즐기는 게 청산도 여행의 핵심이에요.

봄에 청산도를 가면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어요. 4-5월이 절정인데, 언덕 위로 펼쳐진 청보리밭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정말 그림 같아요. 매년 이 시기에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이때 방문하면 행사도 즐기고 청보리밭도 볼 수 있어서 일석이조입니다. 청보리밭 근처에서 사진 찍으면 보정 안 해도 화보처럼 나와요. 봄 여행지로 이만한 곳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도 청산도에 있어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아버지와 딸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노래하는 장면이 바로 청산도에서 촬영된 거거든요. 그 길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서편제 촬영지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감회가 새로울 테고, 안 보셨더라도 그 길의 분위기 자체가 워낙 좋아서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범바위도 청산도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이에요. 바위 위에 올라서면 청산도의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거든요.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긴 한데, 정상에서 보는 전망이 그 수고를 완전히 보상해줍니다. 맑은 날에는 주변 섬들까지 다 보여서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해질 무렵에 가면 노을이 바다 위에 내려앉는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당리 돌담마을은 청산도의 오래된 정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에요. 돌담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마을인데, 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집마다 돌담 위로 꽃이 피어 있고,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정말 평화로워요. 관광객을 위해 꾸민 곳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서 더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숙소는 민박이나 펜션이 대부분이에요. 대형 호텔 같은 건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시골집에서 하룻밤 묵는 느낌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거든요. 민박집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정말 맛있는데, 갓 잡은 해산물로 차려주시는 밥상이 밖에서는 돈 주고도 못 먹는 수준이에요. 전복죽이나 매생이국 같은 건 꼭 한번 드셔보세요. 포장마차나 식당도 몇 군데 있긴 한데,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 민박 식사를 추천합니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 배 시간을 잘 확인하고 가셔야 해요. 하루에 여러 편 있지만 성수기에는 예매가 빨리 마감되거든요. 차를 가져갈 수도 있지만 섬이 크지 않아서 걷기나 자전거로도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어요. 오히려 차 없이 가는 게 슬로시티 분위기에 더 맞는 것 같아요. 자전거 대여소가 선착장 근처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청산도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에요. 대신 느리게 걷고, 바다를 바라보고, 조용한 마을을 거닐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곳이에요. 솔직히 바쁜 일정에 쫓기며 관광지 도장 찍기 하는 여행에 지치셨다면, 청산도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하루를 보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개운한 기분이 드는, 그런 특별한 섬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