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군 대암산 용늪 (sum.inje.go.kr)


인제군 대암산에 있는 용늪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 속 풍경 같아요.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채, 수천 년 동안 고요히 자리를 지켜온 곳이죠. 해발 1280m 고지대에 자리한 이 습지는 남한에서 유일한 ‘고층습원’으로, 비와 안개, 눈이 천천히 스며들어 만들어낸 특별한 생태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끈끈이주걱이나 비로용담 같은 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삵이나 담비 같은 야생동물도 서식합니다.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함께 자라는 드문 환경이라서, 생물 다양성 면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다고 해요.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6월 한 달 동안만 탐방이 가능해요. 코스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서흥리 코스는 왕복 약 5시간, 가아리 코스는 약 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탐방은 자연환경 해설사와 함께 진행되며, 지정된 데크와 나무 계단으로만 이동할 수 있어요.

용늪에 도착하면, 정말 시간의 결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안개가 스며드는 늪,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들, 그리고 낯선 고요함. 이 모든 게 겹쳐져서 자연 그대로의 숨결을 아주 천천히 들려주는 것 같아요.

이곳은 그냥 예쁜 풍경이 아니라, 생태와 지질, 기후 변화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살아 있는 도서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걷는 내내 말수가 줄고,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여행지일 수도 있지만, 자연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터전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다면, 조금 더 조용히,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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