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가정에서 아침 식탁이나 식후에 흔히 등장하는 따뜻한 갈색 음료가 하나 있는데요. 겉보기엔 진한 에스프레소 같지만 막상 한 모금 마셔보면 구수하고 부드러운 보리 향이 입안에 퍼지는 음료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보리를 뜻하는 단어에서 이름이 따왔고, 카페인이 전혀 없어서 임신 중이거나 카페인에 예민하신 분, 어린이까지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잠을 잘 못 이루는 분이나 위장이 약한 분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마트나 온라인 몰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모양도 인스턴트 분말 형태부터 티백, 캡슐형, 통원두처럼 굵게 갈린 알갱이 형태까지 다양해서 평소 즐기시던 방식에 맞춰 고르실 수 있습니다.
이 음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잘 익은 보리 알갱이를 깨끗이 씻어 말린 다음 커피 원두처럼 고온에서 로스팅합니다. 보통 180에서 220도 사이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볶는데, 색이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볶을수록 향이 깊어지고 쌉싸름한 풍미가 살아납니다. 볶은 보리를 분쇄기로 곱게 갈면 우리가 흔히 보는 분말 형태가 되고, 굵게 빻으면 에스프레소 머신용 알갱이가 됩니다.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시면 통보리를 마른 팬에 약불로 천천히 볶다가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골고루 흔들어주시면 됩니다. 다 볶은 보리는 식힌 뒤 밀폐용기에 보관하시고 마실 때마다 그라인더로 갈아 쓰면 향이 훨씬 살아 있습니다.
마시는 방식도 커피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가장 기본은 분말 6그램에 끓는 물 200밀리리터를 부어 잘 저은 다음 그대로 마시는 방식이고, 우유나 두유를 따뜻하게 데워 섞으면 카페오레처럼 부드러운 라떼가 됩니다. 여름에는 뜨거운 물에 진하게 우려낸 뒤 얼음 가득한 잔에 부어 아이스로 즐기면 청량감이 살아나고요. 캡슐 머신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보리 전용 캡슐을 끼워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추출하면 30밀리리터 정도의 진한 음료가 나오는데 이걸 베이스로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만들면 카페에서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단맛이 부족하다 싶으면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한 스푼 정도 곁들이고,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리면 따뜻한 계절 음료로 변신합니다.
건강 측면에서 살펴볼 점도 꽤 많습니다. 우선 카페인이 0인 음료라 늦은 밤에 마셔도 잠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저녁이 되면 잠을 못 이룬다는 분들이 오후 시간대에 대신 마시기 좋고,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이라 카페인을 피해야 하는 분들에게도 부담이 적습니다. 보리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는 수용성과 불용성을 고루 가지고 있어 변비 완화와 장 운동 개선에 도움을 주고, 베타글루칸이라는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보리 차 한 잔이 항산화 물질을 적당량 공급해 면역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칼륨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도 미량 들어 있어 평범한 음료라기보다 작은 영양 보충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다만 모든 음식이 그렇듯 주의할 부분도 있습니다. 보리에는 글루텐이 들어 있어서 셀리악병이나 글루텐 과민증이 있는 분이라면 피하셔야 합니다. 시중 제품 중에는 글루텐 프리를 표방하는 것도 있지만 같은 시설에서 밀과 함께 가공된 경우도 있으니 라벨을 꼼꼼히 살피세요. 또 빈속에 너무 진하게 마시면 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어 식후나 식간에 마시는 편이 좋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면 식이섬유 때문에 가스가 차거나 더부룩한 느낌이 들 수 있으니 처음 시작하시는 분은 하루 한두 잔으로 시작해 보시고요. 어린이가 마실 때는 너무 진하게 우리지 말고 우유에 살짝 섞어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게 좋습니다.
커피와 비교했을 때의 차이도 알아두면 선택이 쉬워집니다. 향과 색은 비슷해 보이지만 입안에 남는 끝맛이 보리는 훨씬 부드럽고 산미가 거의 없습니다. 위가 약한 분에게는 이 점이 큰 장점이고요. 카페인 의존이 심한 분이 갑자기 끊어내려고 할 때 중간 단계로 보리를 활용하면 카페인 금단으로 오는 두통이나 피로감을 부드럽게 넘기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진짜 커피 특유의 묵직한 쓴맛이나 카페인이 주는 각성감을 기대하시면 살짝 아쉬울 수 있어요. 커피의 완전한 대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옵션으로 두고 기분과 시간대에 맞춰 골라 마시는 식이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구매할 때 살피실 포인트도 정리해 드릴게요. 첫째는 원료가 100퍼센트 보리인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일부 제품은 보리에 치커리 뿌리나 콩, 호밀을 섞어 풍미를 변형시키는데 이런 블렌드 제품은 카페인이 미량 들어 있을 수 있으니 라벨을 잘 보세요. 둘째는 로스팅 정도입니다. 미디엄은 산뜻하고 다크는 쌉쌀하고 깊은데 본인 취향에 맞춰 고르시면 되고, 처음이라면 미디엄으로 시작해 보세요. 셋째는 입자의 굵기입니다.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로 우려 마시려면 중간 굵기가 적당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용은 곱게 갈린 제품을 골라야 합니다. 넷째는 보관 상태입니다. 분말은 개봉 후 한 달 안에 다 드시는 게 향이 살아 있고, 남은 분량은 빛과 습기를 피해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 한쪽에 두면 더 오래 보관됩니다.
꾸준히 마셔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커피와 비슷할 줄 알았다가 다른 매력에 빠진다는 분이 많습니다. 식후 한 잔이 입가심으로 부드럽고, 잠들기 전 따뜻하게 한 잔 마시면 속이 편안해진다는 평이 흔하거든요. 사무실 책상 한쪽에 분말 한 통과 머그잔을 두고 오후 4시쯤 한 잔씩 우려 마시는 습관을 들이면 카페인으로 흥분된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가족이 함께 마시기 좋은 음료라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한 잔씩 나눠 드시기에도 좋고, 손님이 오셨을 때 커피 대신 내드리면 새로운 음료라며 반응이 의외로 좋습니다. 가격도 일반 원두커피와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한 수준이라 부담이 적은 편이고, 한 봉지로 60잔 정도는 거뜬히 우려 마실 수 있어 가성비도 괜찮습니다.
응용해 볼 만한 활용 방법도 정리해 드릴게요. 베이킹할 때 우유 대신 진하게 우려낸 보리 음료를 반죽에 섞으면 빵이나 머핀, 쿠키에 은은한 곡물 향이 입혀져 색다른 풍미가 만들어집니다. 티라미수처럼 커피가 들어가는 디저트의 베이스를 이걸로 바꾸면 카페인 없는 버전을 만드실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먹기 좋고요. 따뜻하게 마실 때는 우유 거품을 풍성히 올려 코코아 가루를 살짝 뿌리면 카푸치노 비슷한 모양새가 나오고, 차갑게 마실 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띄워 어포가토처럼 즐기는 방식도 있습니다. 두유나 귀리 우유 같은 식물성 음료와 잘 어울려서 비건 식단을 따르시는 분에게도 부담 없는 음료가 되어주고요. 추출 후 남은 분말 찌꺼기는 버리지 마시고 식힌 다음 화분 흙에 살짝 섞어 주시면 흙 살림에도 도움이 되니 끝까지 알뜰하게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잼이나 시럽을 만들 때 베이스로 활용하면 또 다른 응용 길이 열리고, 진하게 우려낸 음료를 작은 얼음 틀에 얼려 두었다가 다음 날 아이스 음료에 띄우면 묽어지지 않으면서 향이 살아 있는 색다른 한 잔이 됩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보온병에 따뜻하게 채워 차창 풍경을 보며 한 잔씩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니 자기만의 활용법을 하나씩 만들어 보시면 더 정이 가는 음료가 됩니다.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으실 때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의외로 오래 가는 단골 음료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