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과 성장, 둘 중 하나만 잡으면 꼭 다른 쪽이 미끄러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언제, 무엇에, 어떻게 쓰고 줄일지”의 순서를 먼저 정해두는 게 현실적인 균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정교하게만 하려다 타이밍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요. 몇 가지 실무적 기준을 적어볼게요. 완벽하진 않아도 현장에서 바로 써먹기 좋습니다.
첫째, 목표를 하나로 합치지 말고 둘로 분리하세요. 중장기 부채비율 같은 앵커 하나, 그리고 연간 지출증가율 같은 준칙 하나. 부채앵커는 방향을, 지출준칙은 속도를 관리합니다. 그러면 좋아 보이는 단발성 재정 확대도 “총량 속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돼요.
둘째, 경기랑 싸우지 마세요. 경기가 꺾일 땐 자동안정화장치(실업급여, 취약계층 지원)로 바닥을 받치고, 경기가 과열될 땐 그 장치를 과도하게 키우지 말고 평시로 되돌립니다. 포인트는 경기와 반대로 움직이는 재정의 기본 동작을 고장 내지 않는 것.
셋째, 지출을 투자와 소비로 분리해서 다른 잣대를 적용하세요. 도로·철도 같은 물적 인프라뿐 아니라 디지털 전환, 그린 전환, 보육·돌봄·보건 같은 인적자본도 “투자”로 분류하고요. 투자엔 다년 예산과 성과지표를 달고, 소비성 지출엔 종료 시점을 붙이는 게 깔끔합니다. 돈을 빌리더라도 생산성 올리는 투자면 괜찮고, 상시경비는 세입으로 충당한다는 식의 내부 황금률을 두면 균형이 잡혀요.
넷째, 순서를 바꾸면 효과가 확 달라집니다. 긴급 상황에선 1-2년 집중투자 → 민간 규제 정비 → 재정 정상화 순서가 먹히고, 평시엔 규제·제도 개선 선행 → 공공투자는 마중물 → 결과 보고 감액·확대를 결정. 이렇게 하면 재정이 민간을 밀어내지 않고 끌어냅니다.
다섯째, 수입기반은 넓고 얕게. 세율 논쟁보다 공제·감면 정비, 과세 사각 축소가 먼저예요. 소수에게만 매달린 세입은 경기에 더 흔들립니다. 세입을 안정적으로 만들수록 불황 때 재정이 움직일 공간이 생겨요.
여섯째, 금리 리스크를 숫자 하나로 관리하세요. 이자지출이 명목GDP 대비 어느 수준을 넘지 않게, 그리고 평균만기는 몇 년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기 분산과 고정/변동 비율만 잘 잡아도 같은 부채라도 체감 위험이 달라집니다.
일곱째, 성과 없는 재정은 성장도 못 돕습니다. 모든 투자 프로그램엔 착수 전 비용-편익 가늠치, 집행 중 마일스톤, 종료 후 성과평가를 의무화하세요. 탈락시키는 용기까지 포함. 중간에 멈출 수 있어야 후속 사업이 살아납니다.
여덟째, 민간의 기대를 바꿔야 재정이 덜 듭니다. 규제 정비, 경쟁 촉진, 노동·교육 제도 개선 같은 구조개혁을 재정과 묶어 ‘패키지’로 공표하면, 같은 돈으로 더 큰 성장 기대를 만들 수 있어요. 재정이 시장 신호를 보강하는 쪽으로.
아홉째, 스트레스 테스트는 연 1회로 끝내지 마세요. 성장률 낮음, 금리 높음, 환율 급등, 재난 지출 같은 4개 시나리오를 상시로 돌려서, 각 시나리오에서의 지출·세입·차입 계획을 미리 마련합니다. 위기 때 즉흥적으로 줄이고 늘리는 게 아니라, 미리 합의된 스위치를 당기는 느낌으로 가야 흔들림이 적어요.
열째, 설명을 많이 하세요. 숫자보다 신뢰가 금리와 성장에 더 직접적일 때가 있습니다. 몇 년에 걸친 재정경로, 무엇에 쓰고 무엇을 접는지, 실패 시 플랜B까지 공개하면 시장 금리도, 가계·기업의 투자도 차분해집니다. 의외로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싼 성장정책이에요.
결론만 짧게 적자면 이렇습니다. 불황에는 자동안정화와 생산성 투자를 망설이지 말 것, 호황에는 지출증가율을 잠그고 부채앵커를 향해 되돌릴 것, 평시에는 투자와 소비를 분리하고 성과 없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할 것. 복잡해 보이지만, 규칙 몇 개만 지키면 재정 건전성과 성장은 동시에 챙길 수 있습니다. 완벽은 아니어도 충분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