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로수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한겨울인데 잎도 안 떨어지고 초록초록한 사이로 빨간 구슬 같은 열매가 가득하니까 무슨 크리스마스 장식 같더라고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먼나무였는데, 요즘은 제주뿐 아니라 남부 지역 도시에서도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어서 한번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먼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학명이 Ilex rotunda예요. 원래 제주도와 완도, 보길도 같은 남해안 섬 지방에서 자생하던 나무인데, 이름이 재미있어요. 멀리서 봤을 때 빨간 열매가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가까이 갔더니 먹을 게 없다고 해서 먼나무라는 이야기가 있고, 제주 방언으로 먼낭이라고도 불러요. 먹나무가 변해서 먼나무가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무의 외형은 꽤 깔끔한 편이에요. 높이가 15미터 내외까지 자라고 수피는 회백색으로 매끈해요. 잎은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한데, 두께가 있어서 만져보면 약간 가죽 느낌이 나요. 상록수라서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달려 있는데, 이게 먼나무의 큰 매력 중 하나죠. 6월쯤 되면 새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꽃은 워낙 작아서 자세히 안 보면 놓치기 쉬워요.
먼나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빨간 열매예요. 11-12월에 익기 시작해서 한겨울에 절정을 이루는데, 초록 잎과 빨간 열매의 대비가 정말 이국적이에요. 열매는 콩알만 한 크기로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달리는데, 많을 때는 나무 전체가 빨갛게 물들어 보일 정도예요. 이 열매가 늦봄이나 초여름까지도 가지에 붙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상당히 오래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알아둘 점은 먼나무가 암수딴그루라는 거예요. 즉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열매는 암나무에만 달려요. 정원에 심을 때 예쁜 빨간 열매를 보려면 암나무를 심어야 하고, 수분을 위해 근처에 수나무도 있어야 합니다. 가로수로 심을 때도 이 점을 고려해서 암수를 섞어 식재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요즘 먼나무가 가로수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일단 수형이 깔끔해서 별도로 전정을 많이 안 해도 보기 좋고, 공해에 강해서 도심 환경에서도 잘 자라거든요. 은행나무처럼 악취가 나는 열매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벚나무처럼 병해충에 약한 것도 아니라서 관리 비용도 적게 들어요. 특히 겨울에 도심 거리가 삭막해질 때 빨간 열매가 도시 경관을 밝혀주니까 조경적 가치가 높습니다.
키우기 측면에서 보면 먼나무는 원래 난대 수종이라 추위에 약한 편이었는데, 다 자란 나무는 의외로 내한성이 꽤 강해져요. 대부분의 남부 지방에서는 문제없이 키울 수 있고, 서울 같은 중부 지역에서도 겨울 관리만 잘하면 가능하다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어린 나무일 때는 이식이 쉬운데, 큰 나무를 옮기면 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몸살을 하니까 장마기인 6-7월에 이식하고 가지를 좀 쳐주는 게 좋습니다.
먼나무 열매는 사람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새들에게는 중요한 먹이 자원이에요. 겨울에 먹을 게 없는 새들이 먼나무 열매를 먹으러 모여들거든요. 도시에 먼나무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새들도 찾아오니까 생태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원에 한 그루 심어두면 겨울마다 빨간 열매와 함께 새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죠.